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시리즈의 28번째 작품이자, 4기 핸더랜드의 대모험, 16기 엄청난 태풍을 부르는 금창의 용사 이후로 용사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를 소재로 하여 나온 영화이다. 색감이 예쁜 영화이며, 화려한 색감이 눈을 사로잡는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보는 내내 마음을 울리게 하는 그런 영화이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이 세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화였다. 여태까지의 극장판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떡잎유치원 선생님들의 역할이 도드라지게 나온 적이 없었고, 비중도 없던 편이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달랐다. 이번 극장판에서 초반부에 맹구를 몸바쳐 감싸는 모습이나, 후반부에 아이들을 위해 나서는 모습에서 진실된 어른, 진실된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토리의 소재는 원작인 크레용 신짱 23권의 특별편 '미라클 마커 신짱'에서 차용되었다. 원작의 분량이 작은 편이라, 극장편 한 편으로 만들기에는 짧은 분량이다보니 원작 설정을 기반으로 하여 오리지널 요소를 넣어 다채로워졌다.
미라클 크레용으로 낙서왕국을 살리자!
짱구의 세계 위에 하늘에 떠있는 왕국이 있다. 그 이름은 낙서왕국. 지상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그려내는 낙서를 에너지로 삼아서 떠있는 신비로운 왕국이다. 그런 낙서왕국이 붕괴의 위기를 맞게 된다. 시대가 흐르면서 허공에 낙서를 그릴 수 있는 VR 기술이 개발되면서, 지상의 사람들이 낙서를 그리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낙서왕국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떡잎마을을 시작으로 지상의 아이들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이 혼란을 막기 위해서 낙서왕국의 공주는 떡잎마을로 내려오게 된다. 그려낸 것은 무엇이든 실체화시키는 낙서왕국의 보물인 '미라클 크레용'을 가지고 왔지만 이 미라클 크레용은 지구상에서 단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그 단 한 사람은 바로 짱구이다. 짱구는 공주의 명령을 받은 낙서왕국의 궁정화가로부터 미라클 크레용을 받아 세계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이들의 꿈
이 영화의 핵심적인 키워드는 아이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낙서는 어린이의 꿈과 희망임을 암시하고 있다. 짱구가 자신의 꿈을 말하며 나나코를 그리기도 하고, 모두의 바람을 이뤄주는 도우미 용사인 부리부리용사를 그리는 장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대 문명이 발전할수록 낙서를 그리는 아이들이 적어진다는 의미는, 과거에 비해서 창의적인 미래를 꿈꾸는 어린이의 장래희망이 적어지고 있다는 점을 풍자하고 있다. 요즘은 아이들도 어른들의 입맛에 맞추어 변호사, 판사, 교사, 공무원처럼 다양하고 창의적인 꿈이 아닌 안정적인 미래를 자신도 모르는 새에 꿈꾸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어른들에 의해 꿈을 꾸는 것은 불안정한 미래로 꾸짖음을 듣고 하지 말아야 할 나쁜 행동이며, 이러한 판단들이 어른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반부에서 어른들은 짱구에게 미사일과 전투기를 그리라고 하며, 붕괴되고 있는 낙서왕국을 없애버리기 위한 생각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짱구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 나서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모습에 어른들은 마음이 동요되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끔은 이런 아이들의 순수함과 희망적인 마음으로 우리 어른들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짱구가 먼저 그리고,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하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악역이 등장하지 않은 극장판
20기 태풍을 부르는 나와 우주의 프린세스 이후로 두번째로 악역이 등장하지 않은 극장판이다. 직접적은 악역이 나오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악역은 결국 이기심이 강한 인간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뚜렷한 악역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여서 오히려 더욱 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던 영화인 것 같다. 짱구가 여러 번의 이별을 겪는 과정에서 이별의 횟수마다 관객이 흘리는 눈물의 횟수가 늘어나는 영화였다. 이기적인 인간들과 다르게 짱구의 이별 상대들은 미라클 크레용으로 그려낸 친구들이였다. 그들은 모두 짱구를 살리기 위해, 떡잎마을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모두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큰 일이 아닌 작은 일이라도, 나의 희생을 통하여, 누군가를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어른들이 해야할 덕목인 것 같다.